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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한의학을 둘러싼 국제적 동향에 대하여

 명제한의원      2018-10-06

한의학을 둘러싼 국제적 동향에 대하여



渡辺 賢治

慶鷹義塾大学医学部東洋医学講座, 東京, 〒160-8582新宿区信濃町35

Global Movement Around Kampo Medicine

Kenji WATANABE

Department of Oriental Medicine, Keio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35 Shinanomachi, Shinjuku-ku Tokyo, 160-8582 Japan

​Abstract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 is making waves all over the world nowadays. The National Institute of Health started an office of alternative medicine in 1992 and established the National Center for CAM (NCCAM) in 1998. The annual budget has increased to 113.3 million dollars. The NCCAM has founded the Office of International Alternative Medicine (OIHR), to support collaborative work with countries other than USA. In 2003, 10 international planning grants were awarded which included a collaboration with Keio University in Japan.
 In most of Asian countries except for Japan, the government supports promotion of its own traditional medicines. When European medicine came from Holland to Japan, in the Edo period, Japanese doctors quickly adopted European ways and mixed them with traditional Kampo medicine. For example, Seishu Hanaoka combined surgery with Kampo, for the benefit of his patients.
 Taro Takemi pointed out Kampo drugs should be used in Kampo ways, and not in western medical ways. To globalize Kampo, first of all, Kampo should be more visible both in Japan and in the world. Secondly, the government's support is essential. Thirdly, public enlightenment concerning Kampo is necessary. Many people actually confuse Kampo, with dietary supplements. Fourthly, we need faculty members in universities, who can introduce Kampo as a part of Japan's medical culture. Lastly, Japan should contribute more to the development of traditional medicine in Asia.
Kampo is a definitive model of integrative medicine in our world. We must introduce this traditional heritage and treasure, globally.

 

 Key Words : NIH, integrative medicine, medical culture, Seishu Hanaoka, Taro Takemi


요지

 미국국립위생연구소의 국립보완대체의학센터는 연간 예산 1억1330달러로 연구지원 등을 하고 있다. 아시아 각 나라에서는 미국과의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한의학은 중국이 기원이지만, 에도시대에 일본화가 확립되고 일본의 독자 의학으로 꽃을 피웠다. 서양의학이 들어온 뒤에는 華岡青洲로 대표되듯, 환자의 이익을 위해 蘭漢(동서양 학문)을 불문하고 좋은 것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간다는 문화가 일본에는 있었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일시적으로 한의학은 쇠퇴했지만, 의료용 한약제제로 다시 의료현장에 등장했다. 武見太郎은 그것을 추진한 사람이었는데, 서양의학에 안이하게 편입하는 것은 옳다고 보지 않았다.

 이후 한의학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1) 세계에 지명도를 높인다, 2) 국가의 지원체제 정비, 3) 국내에 한의학의 올바른 인식 보급, 4) 의료문화로써 한의학을 교육할 수 있는 인재 육성, 5) 국제사회에서의 전통의학의 보급 및 공헌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키워드 : NIH, 통합의학, 의료문화, 華岡青洲, 武見太郎

접수 : 2004년 3월 11일, 수리 : 2004년 5월 6일

해외에서 주목을 받는 보완대체의료

 하버드대학 의학부 Eisenberg 등은 1990년에 미국 전역의 조사를 하여, 1993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는 미국 전역에 충격을 주었고, 단숨에 보완대체의료에 대한 주목을 받았다. Eisenberg는 1997년에 그 이후의 조사를 하여 JAMA에 발표했는데, 발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〇 1990년에는 미국 국민 성인의 33.8%가 보완대체의료를 이용했지만, 1997년에는 42.1%가 되었다. 그 동안에 생약요법 이용자는 3.8배 증가했다.

보완대체의료를 받은 총 횟수는 1990년 4억 2700만 회에서 1997년 6억 2900만 회로 증가하고, 이는 일차진료 의사에게 진찰받은 총 횟수 3억 8600만 회를 상회했다.

보완대체의료 전체에 지불되는 비용은 1997년에는 212억 달러에 달하고, 그 중 생약요법과 비타민제에 대한 비용은 80억 엔을 넘었다.

〇 약값을 빼고 보완대체의료 서비스 자체에 지불된 비용은 1997년에는 122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미국 전역의 입원비보다 많았다.

보완대체의료 이용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치의에게 이야기하는 건 40% 이하였다.

이와 같은 움직임을 보고 미국국립위생연구소(Nationl Institute of Health : NIH)에서 1992년 대체의료국(Office of Alternative Medicine : OAM)을 설치하고 1992년과 1993년에 200만 달러 국가예산을 할당했다. 예산은 매년 증가하여 1998년에는 국립보완대체의료센터(National Center for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로 명칭을 바꾸고, 예산도 2000만 달러로 증액되어, 2003년에는 1억 1330만 달러가 되었다(그림 1)

NIH의 방향 전환(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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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H은 보완대체의료 연구를 국내에서만 했지만, 2001년 국제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NCCAM 안에 Office of International Health Research(OIHR)를 설치했다. 이를 뒤이어 2001년에는 싱가포르에서, 2002년에는 홍콩에 NIH Grant 신청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2002년 12월에는 일본과의 국제공동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Planning Grant를 발표했으며, 2003년 4월에 신청이 마감되고 10월에 협력자가 발표되었다(표 2).

 

그 개요를 표 3에 표시했는데, 국외협력기관으로 협력을 받는 곳은 홍콩을 포함한 중국이 4, 인도가 3, 한국이 2곳이었다. 일본, 싱가포르, 남아프리카가 1곳씩이었다. 테마로는 생약요법이 가장 많아서 다섯 가지이다.

 ​일본에서는 게이오대학이 하버드대학과의 공동연구로 홍콩, 중국과 함께 협력을 받았다(그림 2).


전통의학이 국책인 중국, 대만, 한국

한편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중국, 대만과 한국에서는 국책으로 전통의학의 해외진출을 후원하고 있다. 특히 눈부신 나라가 중국이다. 1997년에 홍콩을 병합한 뒤에는 「홍콩 한약산업 10개 년 발전요강」을 공포하고, 홍콩을 국제중의학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것에 의하면, 1) 단기간에 중의약 보건제품과 자양품을 개발하여 국제시장에 진출, 2) 장기적으로는 좋은 품질의 치료용 한약 신품종을 개발한다는 전통적 의약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2대 목표를 확정했다. 구체적으로는 ① 관련된 인프라 건설을 강화한다, ② 전통적 한약의 현대화를 실현한다, ③ 중의보건식품과 자양품 등을 발전시킨다, ④ 근대적인 신흥제약업을 발전시킨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전통만 고집하지 않고 생약요법의 새로운 전개를 추진하는 중국 정부의 방침으로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이라는 명칭은 Chinese medicine(CM)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어쨌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는 전통의학에 대한 국가의 노력이 있다(표 4).


한의학은 일본의 독자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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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중국의 비만약에 의한 건강피해가 잇따랐고, 간장애 때문에 사망한 사례도 나왔다. 이는 N-nitroso-fenfluramine이라는 화합물이 의도적으로 들어간 것이 원인이었다.

 ​중국에서의 비만약은 한약, 중국약도 아닌 중국의 건강식품이다. 인터넷으로 보면 「漢方」이라 하여 중국의 건강식품이 팔리고 있다. 「한방」이라는 이미지가 좋기는 하겠지만, 이는 명확히 한의학이 아니다. 이와 같은 사례는 허다하며, 많은 국민들뿐만 아니라 의료관계자까지도 중의학, 한방, 민간약에 대한 구별을 못하는 건 아닐까?

 ​이에 대해 한약 제약회사의 단체인 일본한방생약제제협회에서는 항의를 했지만, 국민의 이해를 얻는 노력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해야 할 것이다.

 ​원래 「漢方」은 에도시대에 일본에 전해진 서양의학을 「蘭方」이라 한 것에 대해, 그대로 해 오던 의료를 총칭하여 사용하게 된 일본에서 만든 말이다. 蘭方이 전래되기 전 일본에는 한의학 밖에 존재하지 않아서 특별히 명칭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영어로는 Kampo medicine이라 하면, 일본의 전통생약요법을 가리키며 혼란이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양의학회가 石橋 회장의 지휘 아래, 동양의학회잡지의 영문표기를 Journal of oriental Medicine에서 Kampo Medicine으로 명칭을 바꾼 의의는 큰 것 같다.

 ​한의학의 기원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중국에서 전래된 것은 일본이 국가로 성립된 5〜6세기 무렵이라 생각되고 있다. 한의학의 일본화는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무로마치室町 말기의 曲直瀬道三 무렵부터 일본화가 꽃을 피웠다. 의료의 일본화가 확실히 표면화된 것은 에도江道시대 이후이다. 에도 중기가 되어 吉益東洞으로 대표되며 중국 이론을 배척하고 고전으로 돌아가려는 고방파의 등장으로 일본화가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현재 일본의 한의학은 에도시대 선철들의 탁견에 의지한 바가 크다. 가령 柴胡劑를 胸脇苦滿이 있는 사람에게 쓰는 것은 일본의 독자적인 고안이다. 게다가 현재는 의료용 한방으로 현대의학 안에 융화되었기 때문에 위궤양, 위염, 만성 췌장염 질환에 응용되고 효과를 거둔다. 十全大補湯 역시 암 치료에는 빠질 수 없는 한약이지만, 이 이야기를 중국, 홍콩의 의사들과 이야기해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처럼 일본의 한의학은 에도시대에 일본화되어 의료용으로 30년 가까이 역사 속에서 완전하게 일본 독자의학으로 존재한다. 이 동안 大塚敬節, 矢数道明을 비롯한 쇼와昭和시대 선인들의 노력에 의해 한의학의 지위는 향상되고, 2002년에 핵심 커리큘럼으로써 의학교육에 도입되기에 이른다. 80여 의학부, 의과대학 전체에 한의학 교육이 도입되고, 현재 게이오대학에서도 필수화 방향으로 진행하며, 핵심 프로젝트 역시 서서히 늘고 있다. 

 ​대체의학에서 종합의학으로 에도 한방가로 보는 통합의학

 ​바야흐로 세계는 대체의료에서 통합의료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결국 서양의학의 교체라는 생각에서 서양의학과 융합하는 시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의학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통합의학이다. 일본은 다신교이며, 역사적으로 보아도 좋은 점은 흡수해 나가겠다는 유연성이 있다. 에도시대에 처음으로 해부를 한 山脇東洋은 당시 고방파 한의학의 큰 권위자였지만, 서양 해부학책을 충분히 숙독했다. 교토의 六角 감옥에서 宝暦 4(1754)년, 남자 사형수 시신을 해부하고, 실제로 달라붙어 인체구조를 관찰했다. 그 해부는 杉田玄白(1733〜1817)의 『解體新書』가 나오기 17년 전이다. 

華岡青洲로 보는 和蘭 절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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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蘭學의 보급과 함께 한의학과 서양의학에 정통했던 많은 의가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가 華岡青洲일 것이다(그림 3). 기슈紀州(현재 那智郡平山村)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 교토로 유학하여 吉益南涯에게 사사하여 고방을 배웠다. 잇달아 외과를 大和見水에게 배웠다. 귀향하여 한의학과 蘭學 두 의학을 절충하여 외과를 전공하고, 1804년에 通仙散을 이용하여 전신마취로 세계에서 최초로 유방암 수술을 했다. 이는 잭슨이 했던 에테르 마취보다 36년 앞선다. 華岡青洲의 좌우명으로 「내외합일, 醫는 오로지 活物窮理에 있다」가 알려져 있다.
「치료법에는 고금이 없으니, 옛것에 구애되면 지금에 통하지 않는다. 내과를 빼고서 외과 치료는 불가능하다. 蘭方을 말하자면 이론뿐이고 치료는 서투르며, 한의학을 말하자면 치료는 뛰어나도 역사에 지나치게 얽매여 진보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術이란, 치료를 活物로 생각하고 법은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것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법칙에 따라, 모든 병을 치료하는 데는 처방과 조제는 꼭 결정된 것이라고 구애받지 않고, 약의 힘이 부족하면 침구로 치료하고, 침구로 하지 못하는 것은 수술로 치료한다. 적어도 사람을 살리려는 자는 마땅히 못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치료에 관해서는 유연하며,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 도입한다. 이것이 華岡青洲의 생각이며 本間大軒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에게 계속 전승된 정신이다. 

 ​실제로 華岡青洲가 사용한 한약에는 마취약(通仙散)의 약력을 돕기 위해서 半夏瀉心湯을 쓰거나, 수술 후 마취 각성을 빠르게 하기 위해 三黃瀉心湯을 사용하거나, 수술 후 회복을 빠르게 하기 위해 人蔘養榮湯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 외 외상 후 마비에 桂枝加朮附湯과 화상에 桂枝加龍骨牡蠣湯을 쓰는 등 당시 서양의학과 한의학에 모두 없는 것이다(표 5).

 한약에 관해서는 華岡青洲의 창방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많다. 유명한 처방은 十味敗毒湯인데, 피부 질환에 지금도 많이 쓰인다. 또 歸芪建中湯 역시 만성 화농성 질환, 욕창에 쓰일 기회가 많다. 연고로는 紫雲膏가 유명하다(표 6). 무릇 通仙散(朝鮮朝顔. 학명:Datura metel) 자체가 한약재이며, 유럽에서 시행한 흡입 마취와는 전혀 다르다. 이 레시피에 관해서는 몇 종류가 전해지는데, 弘前대학의 松木明知의 실험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 효과가 실증되었다.

 ​이처럼 일본 의학의 특색은 순응성이 높으며, 환자에게 좋은 것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실학 정신이 숨쉬고 있다. 華岡青洲처럼 치료에 동서양이 없다는 입장을 그 후에도 일본이 일관한 것 등 현재 완전히 다른 의료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듯하다.

서구에서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 의료

 그리고 마침내 1977년 한약 엑기스 제제의 본격적인 보험 등재에 이른다. 이에 대해서는 武見太郎 전 의사회회장이 대단히 힘을 썼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그림 4). 게이오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이화학 연구소에서 최첨단 연구를 하던 武見이 어떠한 이유로 한의학 추진자가 되었을까? 그것은 환자였던 幸田露伴의 영향이 크다. 幸田露伴은 한의학 서적 몇 권을 武見에게 보여주고 한의학의 진수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武見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당시(1976년 무렵), 의약품의 70%가 수입에 의존하고, 역으로 일본에서 수출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다는 점이었다. 일본의 약학은 長井長義가 麻黃에서 에페드린 추출을 해낸 것처럼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그러나 임상 응용이 되면 서구에 한걸음이나 두 걸음 늦었다. 30년 전에 武見이 일본의 제약 상황을 한탄했는데, 지금은 더욱 비참한 상태가 되어 있다. 의약품 중에 해외에서 수입한 약물은 어느 정도 차지할까? 최근 약값이 비싼 약품의 대부분은 서구에서 수입한 것이다. 또 의료현장에서 쓰이는 의료재료 또한 대부분은 수입품이다. 게다가 이른바 내외 가격차에 의해 서구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비싼 가격 설정이 되어 있다. 의료비가 상승하여 환자, 국가의 부담이 증가된다고 하면서, 국내 산업을 촉진시키려는 국책은 일본에는 없는 것 같다. 국민이 지불하는 의료비의 대부분이 서구로 흘러가는 것이다.

일본의 의료수준은 서구에 비해 낮은가?

 ​일본 의학은 전후에 독일 의학, 전후에는 미국 의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올바르다는 풍조이다. 최근에는 예상대로 「EBM을 근거로 의료를 한다」는 평판은 좋지만, 그 근거는 거의 서구에서 나온 임상시험 결과이다. 유전 배경과 식사, 환경 또한 다른 異國의 데이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것을 금과옥조처럼 다루는 것은 어떨까? 일본은 그만큼 자국을 비하해야 하는 나라일까?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공개하겠다. 몇 년 전에 네덜란드 라이덴에서 貝原益軒에 관한 회의가 있어서 順天堂대학의 酒井시즈 교수, 茨城대학의 真柳誠 교수 등과 참가했다. 그 무렵 에도시대 일본의학 수준은 매우 높았음에도, 무슨 이유로 메이지 정부는 한의학을 버렸는가, 라는 논의가 있었다. 16세기 베잘리우스로 대표되는 유럽 해부학 발달이 일본에 들어와서 한의학을 능가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유럽의학의 우위성에 압도되어 한의학이 쇠퇴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 의사들의 견해는 달랐다. 「해부는 단순한 장기의 나눔에 지나지 않는다. 형태적인 분석과 치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당시 유럽 의학의 수준은 일본 한의학에 비해 훨씬 낮았다. 일본이 한의학을 버린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 말에 나 역시 깜짝 놀랐다. 유럽에서도 일본 한의학은 높게 평가받았던 것이다.

일본 한의학은 일본의 의료문화

 ​또 다시 武見太郎의 말을 인용하겠다. 「의학에는 동서양 의학을 불문하고, 태어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의학이 문화로써 발전해야 한다. 한의학 사상은 인간을 전체로 보는데 훌륭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중대한 점은 정적인(static) 관점은 아니며, 다이나믹한 관점이다. 일본 한의학은 지금의 서양의학과 공통 문제의식을 가지며, 상호 진보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武見은 한의학 추진파였지만 결코 서양의학과의 안이한 융합을 시인하는 입장은 취하지 않았다. 한의학 사상 그 자체가 일본의 우수한 유산이며 그것을 소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武見이 한의학의 우수한 점으로 든 것은, 인간을 전체로 본다는 점과 다이나믹한 방식으로 본다는 점이다. 전자에 관해서는 이제 와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후자에서 말한 다이나믹이라는 것은 예리한 지적이다. 곧 서양의학, 그중에서도 독일의학의 영향을 받은 일본에서는 우선은 진단이 중요하다. 일단 진단이 내려지면 그것은 의사나 환자에게 모두 늘 붙어다닌다. 정말이지 정의를 중시하는 독일적인 발상이다. 우선은 정의를 보여준 뒤 일을 착수하게 된다. 한편 동양의 사상은 한층 더 유연하다. 같은 상태라도 환자가 다르면 치료가 다르다. 아울러 같은 환자라도 그 경과에 따라 치료법은 계속 변한다. 이와 같은 유연성은 서양의학에서는 볼 수  없는 점이다. 武見의 지적대로 의료는 그 국가의 문화 위에 성립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한의학이 가야할 지침을 30년 전에 보여준 大塚恭男의 말을 인용하겠다.「적어도 앞으로 한의학은 견고하게 鎖國하여 保身을 도모하기 보다는, 오히려 전면적으로 開國하여 현대의학의 한 가운데에 몸을 두어 서로 비판하고 비판받으며 서로의 지위를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강하게 지적할 일환으로 하는 일본의 신의학이 언급되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이 나오지 않는 한 이 의견에는 즉각 찬성하기는 힘들다. 두 의학은 본질적으로 서로 용인하지 않는 점을 갖고 있으며, 적어도 현 상황에서는 테제와 안티테제로써 병존해야 할 것이다.」
大塚은 두 의학이 결코 타협하여 융화되는 일이 없도록 경종을 울린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 융합은 서로 반발하면서 시간이 걸려 일본의 새로운 의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코멘트는 현 시대에도 혜안이다. 

 ​이 두 명의 위인이 보여준 것은, 한약은 「한의학」이라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숙성되어 온 의학사상을 바탕으로 쓰여야 하며, 서양의학적 방법을 쓰는 정도라면 서로 용납하지 않더라도 반발해도 된다는 생각이다. 다행히 한의학의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이 안이하게 서양의학에 편입시키지 않고 한의학의 전통을 지키며, 때로는 서로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반발하면서도 서서히 일본 의료로 뿌리를 내려왔다.

새로운 의료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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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생각하면 일본에도 「한의학」이라는 자랑할 만한 의료 문화가 있다고 단언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인의 나쁜 습관은 해외에서 인정하면 바로 그것을 인식하는 점일 것이다. 한의학이 우수한 의학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해외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말 국제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다.

첫 번째, 전 세계에 우선은 지명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문 논문이 더욱더 나와 줘야 할 것이다. 국내에 대해서는 올바른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국가 지원체제의 정비이다. 한의학이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일본의 의료 문화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법의 정비가 필요하다. 현재 10조 엔 이른바 생약 제제의 시장을 둘러싸고 수면 아래에서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중국, 대만, 한국은 국가적으로 미국 NIH의 협력금 취득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는 전혀 그런 징조가 없다. 이대로 중국의 생약 제품이 미국을 경유하여 일본에 수입되는 사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武見의 遺志와는 전혀 정반대로 한의학까지도 미국에서 수입품이 되어 버릴 날도 가까운 것 같다.

세 번째로 국내로 향해서 한의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보급되도록 계몽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한방협회 등이 그 활동을 하지만, 동양의학회로써도 더욱 정력적으로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 한의학 교육 본연의 모습에 대한 문제이다. 커리큘럼에 「和漢藥을 개설할 수 있다」라는 말이 들어간 것에 의해 한의학 교육은 전국 의학부, 의과대학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교원 부족으로 충분한 교육기반이 정비되어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이후 교육체제가 조정되는 중에 의료 문화로써의 한의학을 교육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가 서양의학 교육 중에 서양의학적 수법의 한가지로 한약을 쓰는 게 아니라, 동양의학적 사고에 기반하여 한약을 사용할 수 있고, 그것을 일본 의료문화로 세계에 소개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 번째로 WHO에서도 전통의학 지원을 하고 있다. 한국, 중국은 적극적으로 그 활동을 지원하지만, 일본은 그다지 지원체제가 성립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의 전통의학의 보급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론에 관해서 게이오대학 의학부에 유학 중인 Plotnikoff 미네소타 대학 의학부 조교수는 아사히신문의 나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였다(표 7).

1. 일본의 대학에서 유전자공학과 단백질 해석 같은 최첨단 기술을 구사하는 한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추진한다.

2. 한의학의 안정성과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중에, 확실한 것을 빨리 영문으로 출판한다.

3. 미국과 일본 대학 간에 연수와 전문가 육성을 포함한 연구 제휴를 추진한다.

4. 한약의 과학적, 경제적 유용성을 증명하도록 임상 연구를 적극적으로 조성한다.

해외 의사가 한의학을 평가하여 이와 같은 제언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해외의사가 한의학 공부를 위해 富山의과약과대학, 北里연구소 등에 온다. 이후 국제 전개를 고려해 나가며 한의학을 이해하고 세계에서 활약할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일본에서 세계로 새로운 형태의 한의학을 알리기를

 ​이처럼 노력을 계속하여 한의학이 세계로 알려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중요한 것은 한약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의료문화로써 한의학을 알린다는 것이다. 한약의 대부분은 중의학과 공통적인데다가, 원재료의 70% 이상은 중국 등에서 수입된 것이다. 그러나 한의학의 의료문화는 일본의 독자적인 것이다. 에도시대에 일본 독자적인 문화로 꽃을 피우고 의료용이 된 이후, 30년 동안에 서양의학과의 사이에서 더욱 새로운 문화로 계속 확립되고 있다. 여기서도 서양의학과의 병용과 적절한 사용 등에 관해 더욱 발전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동서의학이 통합한 형태의 새로운 의료문화 형성은 일본 밖에 할 수 없으며,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갖고 세계에 알려 나갔으면 한다.

문헌
1) Eisenberg DM, Kessler RC, Foster C, Norlock FE, Calkins DR, Delbanco TL: Unconventional medicine in the United States. Prebalence, costs, and patterns of use. New Engl. J. Med., 328, 246-252 (1993)
2) Eisenberg DM, Davis RB, Ettner SL, Appel S, Wilkey S, Van Rompay: Trends in alternative medicine use in the United States, 1990-1997: results of followup national survey, JAMA, 280, 1569-1575 (1998)
3) http://altmed.od.nih.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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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小曽戸洋 :「漢方」の語の由来と意味, 日本東洋医学雑誌, 54, 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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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武見太郎 : 東洋医学を再検討せよ, 聴心記 216-222, 実業の日本社, (1978)
9) 武見太郎 : 私の見た東洋医学と西洋医学, 漢方医学, 1, 1-2 (1977)
10) 大塚恭男著 : 東洋医学入門, 37-48, 日本評論社, 東京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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